공포의 '공개처형'…공포의 '장기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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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공개처형'…공포의 '장기자랑'
[논픽션실화극] '공개처형'과 '신문지옷 패션쇼'가 벌어지는 이 회사
2020. 11. 23 (월) 18:41 | 최종 업데이트 2021. 12. 09 (목) 09:55
"나이직씨, 7층에서 호출 왔어요." 

두둥. '7층'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분주하게 컴퓨터 자판 위를 오르내리던 손가락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정적. 옆자리 김 대리가 책상 밑으로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잡았다.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잠시 다리에 힘이 빠져 무릎이 꺾이며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얼른 발바닥에 단단히 힘을 주고 일어나 모두의 시선을 뒤로 하고 계단을 올랐다. 

'7층 호출'을 받으면 거래처와 통화를 하다가도 끊고, 당장 마감이 임박한 업무를 하다가도 멈추고, 곧바로 움직여야 한다. 이유는 간단한데 조금이라도 늦으면, 곧바로 ‘당장 올라오라’는 재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다들 눈치챘겠지만, '7층 호출'이란 대표의 부름을 말한다. 물론 백이면 백, 뭔가 문제가 있을 때 부른다. 좋은 일로 부름을 당하는 일은 단언컨대 없다. 

급히 계단을 올라 대표의 자리로 갔다. 역시나. 책상 앞에 세워두고 큰소리로 각종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내용은 내 정신을 붙잡고 있는 한계선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쌍욕을 하지.’ 예상했던 일이지만, 7층의 전 직원들이 다 보는 곳에서 욕을 먹는 일은, 당하는 것도, 보는 것도 여전히 쉽지 않다. 전 직원 앞에서 이뤄지는 일이라 직원들은 이를 ‘공개 처형’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공개 처형을 몇 번 당하고 나면,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지곤 한다. 자존감이 실시간으로 낮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 내가 여기서 저 사람에게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자괴감도 느껴진다. 

계단을 내려와 자리에 도착해 서랍을 열었다. 하필이면 상시 구비해 놓는 두통약이 다 떨어졌다. 한숨을 내쉬는데, 눈앞에 알약 두 알이 올라간 손바닥이 쑥 들어왔다. 옆자리 김 대리다.
 
“여기 두통약이요.” 

텅 빈 서랍을 보며 한숨 쉬는 날 봤는지, 김 대리는 타이레놀 두 알을 물과 함께 컴퓨터 옆에 살며시 내려놨다. 김 대리 역시 회사에만 오면 머리가 아프다며 두통약을 항상 쟁여 둔다. ‘두통약도 공구로 하면 좀 싸나?’ 지금 받는 월급으로는 거의 매일 먹는 두통약값도 부담인지라, 이번에 약을 살 때는 좀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이레놀 두 알을 까서 입에 털어 넣었다. 

“이번에는 뭐가 문제였어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자기 기분이 상했다는 거 같은데, 왜 상했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영혼까지 탈탈 털어내고 왔지만, 나는 아직도 내 영혼이 털린 이유를 모르겠다. 딱히 업무상 실수가 있었거나, 잘못됐다는 얘기는 없었다. 결론은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인데, 내가 찍힌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다음주 워크샵인건 아시죠? 이번에는 누가 어떤 장기자랑을 하려나…”

김 대리가 말했다. ‘워크샵’ 얘기를 듣자마자, 방금 먹은 약이 무색하게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김 대리 말처럼 다음주 주말에 전 직원이 참여하는 회사 차원이 워크숍이 있다. 매년 이맘때쯤 한다. 워크숍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신입사원 장기자랑’. 경력 신입 상관없이, 새로 온 직원들은 모두 참여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우리 회사의 자랑거리로, 누군가에게는 신입들을 조기 퇴사하게 만드는 1등 공신으로 불린다. 지난 워크숍의 ‘신문지옷 패션쇼’는 꽤 오랜 시간 회자됐다.  

워크숍과 관련된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참 많았는데, 이제 이걸 기억하는 직원들도 거의 없다. 다들 그만둬서… 우리 회사는 ‘365 채용’ 회사로 불린다. 언제나 채용 공고가 떠있다. 매달 신입이 들어오고, 매달 누군가는 사표를 낸다. 

이 정도 퇴사율을 보면 누구라도 ‘뭔가 조직에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할법도 한데, 경영진은 나간 사람들을 사회의 낙오자, 부적응자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진짜 사회 부적응자는 누구일까?

매일 아침 나는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출근을 한다. 단 한번만, 딱 한번만이라도, 입사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내 멱살을 잡고 뜯어말리고 싶다. 

“도망가!”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논픽션실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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