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전공 살려 레트로 감성 터지게 일하기

인터뷰
예체능 전공 살려 레트로 감성 터지게 일하기
[부캐와본캐사이] 돈의문박물관마을 플레이 도슨트의 N잡 이야기
2021. 06. 08 (화) 17:24 | 최종 업데이트 2021. 11. 16 (화) 12:36
 
"예체능의 취업은 WHAT이다. 취업이 뭔지 모른다."

전공에 따라 다른 취업 현실을 6하원칙에 맞춰 풍자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글에서 '예체능 계열 취업'을 정의한 내용이다. '의대의 취업은 WHEN, 언제 취업하는 지가 문제고 공대의 취업은 WHERE,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다'라고 정리한 것과 달리, 예체능의 취업은 그 자체로 물음표다. 이 말을 증명하듯 각종 취업 통계에서 예체능 전공자의 취업률은 거의 최하위에 자리하고 있다. 

예체능계 취업은 정말 물음표일 뿐일까? <컴퍼니 타임스>가 예체능이라는 전공을 살려 일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일하는 플레이 도슨트들이다.

'의(義)를 북돋는 문'이라는 뜻의 돈의문은 서대문의 다른 이름이다. 서대문은 1396년에 세워졌지만, 경복궁의 지맥(풍수지리학에서 땅 속의 정기를 순환한다는 줄)을 해친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 그 후 1422년,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에 새롭게 조성된 뒤에는 새로운 문이라는 의미로 '새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렇게 생긴 새문 뒤에 마을이 생겼고, 1915년 일제가 도시계획을 이유로 서대문을 철거한 뒤에도 마을은 살아남았다. 명문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인 1960~1970년대에는 사교육 명문가로 이름을 떨쳤고, 학교들이 떠난 뒤 길 건너에 강북삼성병원 신관이 열리고 마을 뒤로 교육청이 옮겨오면서 1990년대  동네는 맛집 골목으로 변신했다. 

이후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근린공원으로 바뀔 뻔했지만, 서울의 근현대사를 그대로 간직한 동네는 7080 세대가 추억하는 서울을 복원한 '돈의문박물관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에 '플레이 도슨트'가 있다. 도슨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을 말하는데, 플레이 도슨트는 말 그대로 관람객과 함께 즐겁게 놀면서 마을을 안내해주는 안내인이다. 연극영화·레크리에이션 등을 전공한 배우들이 플레이 도슨트로 마을 주민 역할을 맡아 관람객들의 투어를 이끌고 있다. 

쇼핑 호스트, 행사 MC, 마을 배우로 N잡러의 삶을 사는 선민지 플레이 도슨트 팀장과 태권도 사범, 치어리더에서 마을의 여고생으로 전직한 이새별 플레이 도슨트, 연극 배우와 마을 배우로 투잡을 뛰는 이준호 플레이 도슨트가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햇살 좋은 낮, 서울의 옛 마을에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왼쪽부터) 돈의문박물관마을 플레이 도슨트 이새별(이꽃분 역), 선민지(MC 민지, 선도부장 역), 이준호(서대무 역)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선민지/ 안녕하세요. 돈의문박물관마을의 마스코트인 MC 민지입니다. 26살이고요. 플레이 도슨트로 활동한지는 3년차고요. 원래 혼자 하다가, 올해 3월에 팀이 새롭게 꾸려지고 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팀원은 저를 포함해서 5명입니다.(웃음)
 
이준호/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선생님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입니다. 28살로 팀원 중에 가장 연장자입니다. 

이새별/ 저는 돈의문마을에 사는 여고생 꽃분이 역할을 연기하고 있어요. 22살로, 마을 배우들 중에 제일 젊고요. 
- 맡고 계신 일과 해온 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이준호/ 돈의문박물관마을에는 휴무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플레이 도슨트가 진행하는 마을 투어가 있어요. 저는 목요일마다 선생님 서대무 역할을 맡아 마을의 건축 이야기를 관람객들에게 들려주고 있죠. 투어가 없을 때에도 마을에 상주하면서 안내하고 있고요. 이곳에서는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극단에 소속된 연극 배우로 활동하면서, 삼청교육대 조교 연기로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수상했어요.

선민지/ 저는 이곳에서 맡고 있는 일이 많은데요. 일단 배우 팀장으로 팀원들을 챙기고 있고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다보니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관람을 오세요. 그럴 때는 마을의 마스코트로 의전도 담당하고요. 주말에는 'MC 민지와 함께하는 돈의문 국민학교 플레이 도슨트'라는 이름의 투어를 진행해요. 남녀노소 모두 같이 마을을 돌면서 신나게 뛰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죠. 그리고 밖에서는 라이브커머스 쇼핑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행사 MC도 병행하고 있어요. 

이새별/ 저는 유아 담당 플레이 도슨트에요. 금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마을을 산책하는 '꽃분이와 함께 동네 한 바퀴'라는 투어를 진행해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해서 태권도 사범으로도 일을 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했던 태권도 말고도 고등학생 때 응원단 활동을 하면서 배운 치어리딩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프로 스포츠 경기의 치어리더로도 활동했죠.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다 해보자'는 주의라서 혼자 인터넷 방송 BJ도 하면서 다른 채널과 합방도 했었어요. 
- 투잡, 쓰리잡을 뛰는 'N잡러' 느낌이 물씬 나는데요. '본캐'와 '부캐'로 본인의 일을 나눌 때, 어떤 일을 더 본캐로 여기나요? 

선민지/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의 플레이 도슨트 일이 제 본캐죠. 행사는 아무래도 일회성인 경우가 많고, 이 일을 하기 전에는 행사 진행자가 제 본캐였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조금 밀려났어요. 코로나로 다들 힘드신 와중에 이런 발언은 조심스럽지만, 코로나로 인해 생겨난 자리가 '라이브 커머스'거든요. 꿈이 공중파 홈쇼핑 채널 쇼호스트인데 거기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더 빨리 온 셈이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서 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 일을 부캐로 열심히 키우고 있어요. 플레이 도슨트가 본캐로 느껴지는 이유는, 제가 주말에 진행하는 투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일이 쇼호스트로 나아가는 길에 큰 도움을 주고 있거든요. 

이준호/ 제 본캐는 무대를 가리지 않고 '배우'예요.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꾸면서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연극영화 전공으로 졸업할 정도로 평생 배우로 사는 것이 목표인데요. 활동 범위를 넓히려고 연극제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고 찾아가서 공연을 하는 '오픈 런 씨어터'에도 더러 함께했어요. 웹드라마에도 배우로 참여하고요. 그러던 중에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이전만큼 배우로 생활을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크게 들 때, 돈의문박물관마을 공고를 봤어요. 플레이 도슨트 일이 곧 마을에서 배우로 활약하는 것이라 제 본캐는 계속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새별/ 저는 지금 딱 본캐와 부캐를 정의하기가 어려운데요. 지금은 플레이 도슨트 일 하나만 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하고자 하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어요. 그러다보니 끈기 있게 태권도도 꽤 오래 배웠고 사범 일까지 하게 됐고요. 치어리더 역시 마찬가지였죠. 고등학생 때 마지막 공연이 끝난 다음에 프로 경기에서도 치어리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치어리더 모집 공고를 검색해서 나오는 곳에는 모두 지원했고 농구, 배구 쪽에서 활동을 했어요. 무릎이 안 좋아서 현재는 못하고 있지만, 회복해서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싶을 정도로 치어리더 일에 대한 애정이 가장 커요. 
 
- 예체능 전공자의 취업을 주제로 이 인터뷰가 시작되었는데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취업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선민지/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하면서 2018년 평창올림픽에 플레이 서포터로 참여했어요. 리포터로 101일 간의 일정을 소화했는데요. 이때의 경험이 취업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예체능 계열 취업에서는 본인이 관심과 끼를 업계 관계자들에게 가능한 자연스럽게 많이 노출하는 것이 중요해요. 평창올림픽 리포터로 알게 된 업계 관계자분들 추천을 통해 지금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일자리를 알게 된 것처럼요. 2019년에 제가 입사할 때는 플레이 도슨트 자리가 하나라서 경쟁이 상당히 심했는데, 정말 '생쑈'를 했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면접 때 최선을 다해 실기에 임했어요. 

이준호/ 대학 생활부터가 예체능 학생들은 문과나 공대생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일단 MT를 가도 조를 나누고 조마다 다른 역할을 부여해서 상황극을 했거든요. 만약 본인이 속한 조가 '곰'을 맡았다면 곰처럼 행동하고 '외국인 관광객' 역을 뽑았다면 그에 맞게 연기해요. 일상에서도 연기 전공을 계속 염두하면서 움직이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것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인지는 미지수죠. 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연기로 진로를 잡아서 다른 삶에 대한 공부와 관찰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아쉬움을 달래려고 이곳에 왔어요. 여기서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일과 삶, 연기에 대한 공부 모두 하고 있죠. 진심으로 합격을 바라면서 면접 때는 투어를 진행하는 도슨트 연기를 실감나게 선보였어요. 

이새별/ 저도 대학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했어요. 일단 전공 자체가 특징이 확실해요. 학교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함께 있는 '행사 단톡방'이 있거든요. 그 톡방에서 많은 섭외와 추천들이 오가요. 학생 대부분이 하이 텐션인 상황에서 내가 행사 인원으로 선발되려면 끝없이 끼를 발산하고 본인을 어필해야 하죠. 그러다 보니 이 일을 추천을 통해서 알게 됐고요. 저도 이곳에 오기 위해 저만의 전략을 세우고 면접 준비를 했어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태권도를 가르쳤던 일을 살려서 유아 맞춤 투어를 진행하는 연기를 했고 이것으로 합격했어요.
- 본캐와 부캐를 오가면서 체력과 멘탈을 관리하는 팁이 있나요. 

선민지/ 저는 오히려 내려놓는 방식으로 멘탈 관리를 하고 있어요. 여러 사람 앞에 서는 일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콕 박히는 말을 담아두면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사람을 보는 재미를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멘탈을 잡죠. 이럴 때는 제 일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겨지네요. 그날의 스트레스는 그날 풀려고 해요. 일 끝나고 즐기는 반주 한잔이 주는 즐거움이 정말 크더라고요. 체력은 틈날 때마다 걷고 계단을 오르면서 맨몸운동으로 키우고요. 

이새별/ 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안 되는 성격이에요. 누군가 제게 상처되는 말을 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면 하루 종일 그 일이 계속 저를 괴롭혀요. 그러나 일을 하면서 제 안 좋은 기분을 티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일이 끝난 뒤에 같이 일하는 도슨트들에게 신세 한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멘탈을 키웁니다. 체력 같은 경우에는, 키우는 강아지가 웰시코기인데 온 가족이 간식을 주다보니 20kg로 비만이 됐어요. 강아지의 다이어트를 위한 산책이 제 체력을 자연스럽게 키워 주네요. 
-어떤 계기로 예체능 계열의 전공과 일을 택하게 되었는지 말해주세요. 

이준호/ 개인적으로 귀엽고 어이없는 계기였다고 생각해요.(웃음) 중학교 3학년 때 반장으로 임원 수련회를 가서 장기자랑 최후의 1인이 된 것이 계기였어요. 그때 무대에서 주목받으면서 느낀 전율을 잊지 못해, 예고 입시에 지원해서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어요.

선민지/ 반장, 부반장.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 나서야 하는 자리가 있으면 꼭 나가던 아이였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 행사의 진행이 모두 제게 맡겨지고 저는 여기에서 희열을 느꼈죠. 그때부터 저는 진행자, 쇼호스트의 길을 가야겠다는 확신을 갖고 움직였어요. 

이새별/ 저도 비슷해요. 장기자랑에 무조건 나가고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였죠. 축제, 공연 등의 행사가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어요. 카메라의 시선을 받기 위해 전공을 택했고 치어리더 일을 경험한 뒤 지금 이곳에 왔죠.
- 여러분이 그리는 '나의 10년 후'가 듣고 싶습니다. 

선민지/ 공중파 홈쇼핑 채널에서 쇼호스트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10년 사이에 큰 성장을 이루고 동시에 가정도 꾸리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일과 사랑, 삶에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정이 넘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정희네 같은 술집도 운영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이준호/ 10년 후면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요. 그때는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내공있는 배우로 연기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이새별/ 30세 전에 결혼해서 두 명의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싶어요. 그리고 10년 뒤에는 직업은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모르겠네요. 
- 끝으로, 나에게 한 단어로 돈의문박물관마을이란? 

이새별/ 직장. 
선민지/ 비빔밥.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맛있는 맛을 낸다. 
이준호/ 정류장. 배우라는 길로 직행 버스를 타고 달리던 내게, 새로운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주는 환승 센터 같은 곳. 

필름으로 찍은 돈의문박물관마을/사진=오승혁 기자
오승혁 기자 [email protected]
#직장인고민#커리어#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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