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넷마블엔투 MK(머지쿵야)실 아트팀 컨셉파트장
장애인 의무 고용률이 증가하고 고용도 매년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지만 실제 고용률은 3%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친환경 비누와 세제, 샴푸 등을 만드는 동구밭, 커피 로스팅, 쿠키, 꽃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베어베터, 구두회사 아지오, 청각장애인 택시를 운영하는 코액터스 등 장애인의 일하기에 고민을 쏟고 있는 회사들이 점차 늘고 있지만 민간 기업에서 동료로 장애인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좋은 일자리일수록 더더욱.
체감 내용은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상시근로자 5인 이상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 근로자는 단순노무 종사자가 43.8%(2021년 기업체 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달한다. 비장애인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 대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관리자, 전문가 및 관련종사자 등은 전체 대비 장애인 비율이 절반 이하로 낮았다.
이해는 관심에서 출발한다. 동료로 만나지 못해 몰랐던 장애인 근로자의 일하기는 어떤지 그래서 듣고 싶었다. '모두의마블'로 유명한 게임개발사 넷마블엔투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일하며 지난 14일,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산업포장을 수훈한 이지현 MK(머지쿵야)실 아트팀 컨셉파트장의 소식이 들려왔다. 장애인 고용 인식개선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은 만큼 현장에서 부딪히며 겪고 느낀 이야기들이 궁금해 서면으로 물었다.
◇ 순수 창작에서 게임 그래픽 전문가로…게임 디자인 공부, 포트폴리오 준비 등 노력
이지현 파트장은 처음엔 순수 창작의 길을 꿈꿨다. 소통 없이 혼자서도 작업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 그랬던 그가 게임회사에서 일하기로 용기를 낸 데에는 남편의 응원이 큰 역할을 했다.
"게임회사에서 지금 제가 하는 일을 하고 있던 남편이 ‘저도 할 수 있다'고 늘 응원해준 게 도움이 됐어요. 게임을 사랑했던 것도 이유였고요. 게임을 매개로 타인과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매력 있었거든요. 상업예술에 도전할 결심을 한 뒤 배경 원화가를 목표로, 그간 해오던 순수 회화가 아닌 게임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게임회사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끝에 게임업계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이후 게임 배경 원화가로 경력을 차곡차곡 쌓던 중 평소 즐겨하면서 꼭 한 번 직접 그린 원화를 선보이고 싶었던 게임인 '모두의마블' 채용 공고를 보게 됐고, 지원해 2019년에 입사했다. 현재는 '모두의마블', '캐치마인드', '야채부락리', '머지쿵야아일랜드' 등에서 게임 그래픽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8년 넘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모두의마블'에서 게임을 처음 실행할 때 나오는 로딩화면과 게임할 때 주사위, 건물 랜드마크 등의 이미지를 직접 작업했어요. 그림을 그리고 맞히는 퀴즈 게임 ‘캐치마인드'에서는 쿵야 캐릭터 코스튬에 참여했고요. 지금은 상반기에 전 세계 출시 예정인 '머지 쿵야 아일랜드'의 메인 콘셉트 원화가로 참여 중이고, 파트장으로서 전반적인 콘셉트 원화도 관리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 처음 일할 땐 힘든 점도 있었다. 주로 메신저로만 소통할 수 있어서 업무 진행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넷마블엔투 입사 후 상황은 나아졌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내 분위기가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단다.
"넷마블은 넷마블문화재단을 통해 장애인 조정 선수단 창단, 전국 특수학교 및 유관기관 내 '게임문화체험관' 개설, '전국 장애학생 e페스티벌' 등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장애인 표준 사업장으로 '조인핸즈 네트워크'도 운영 중이고요.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파악하고 회사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장애인 고용에 친화적이라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게임은 개발부터 그래픽, 사운드 등 다양한 직무가 함께 하기에 협업이 특히 중요하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특화된 시스템, IT기술 등을 활용해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회의할 땐 실시간으로 문서로 정리해서 회의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마지막에 제가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요. 평소 업무할 땐 단체 메신저방을 통해 업무 진행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고요. 음성 인식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서 전보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수월해지기도 했죠. 제 핸디캡을 배려한 비대면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핸디캡 뚫고 취업해도 다시 마주하게 되는 벽…"장애인 배려한 시스템과 환경개선 필요"
이렇게 일하면서 파트장으로 자리잡은 그는 주변 동료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해 장애인 고용인식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산업포장을 수훈받았다. 포장은 훈장 다음가는 훈격으로 대통령표창보다 높은, 상훈이다. 그는 "제 자리에서 묵묵히 노력했는데, '장애인도 열심히 노력하면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기뻐했다.
이 파트장은 장애인들을 위한 사내 멘토 역할을 맡고 장애인을 위한 목소리도 내는 등 장애인들의 일하기에 힘쓰고 있다.
"넷마블엔투에는 저처럼 청각장애를 가진 동료가 있어요. 부서는 다르지만 같은 장애로 인해 힘든 점을 서로 공감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어요. 인사팀이나 같은 팀 동료들을 통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보이면 지속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고요. 한 걸음씩 불편한 점을 개선해 나가면서 저 스스로도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이 파트장처럼 게임업계 혹은 전문영역에서 일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그는 "장애 유무를 떠나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비장애인과 비교해도 실력 차이가 없어야 한단 거다.
"제가 일하는 게임 그래픽을 예로 들면 게임에 어울리는 그림이 어떤 건지 많이 연구해야 해요. 캐주얼풍이라면 캐주얼에 맞는 색감과 모양이 중요하고, 실사풍은 현실과 게임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죠. 디자인한 콘셉트가 유저에게 정확히 잘 전달되는지 수시로 파악하기 위해서 게임도 많이 해야 하고, 디자인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해요."
먼저 기본적으로 뭘 잘하는지 자신의 역량을 정확히 판단하고, 취업하고 싶은 회사에 대한 정보를 잘 알아본 후 비전도 분석하길 권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게임업계에서 자리잡은 이 파트장 또한 장애인으로 일하면서 비장애인들의 편견에도 숱하게 부딪혔을 터. 그가 말하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향해 갖는 가장 큰 편견은 뭘까?
"장애인의 핸디캡으로 인한 일처리 능력입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간 능력 차이가 없는데도 정보 공유가 부족해서 혹은 (비장애인이라면) 아무 것도 아닐 상황에서 사소한 오해와 마찰을 겪기도 해요. 그걸 능력이 부족한 탓으로 보는 거죠. 이런 점이 가장 큰 편견이 아닐까 합니다."
이지현 파트장은 많은 장애인은 꿈이 있어도 핸디캡으로 취업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고, 취업을 해도 이런 편견과 부딪혀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기업들이 장애인을 배려한 시스템과 환경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동료로서 협업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 개선도 절로 이뤄질 거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