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김대리, 끈기가 없어서 퇴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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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김대리, 끈기가 없어서 퇴사했다고?
대기업 직원들이 말하는 "내가 퇴사하는 이유는…"
2022. 06. 21 (화) 15:22 | 최종 업데이트 2022. 06. 23 (목) 11:00
"어렵게 들어간, 그 좋다는 대기업을 왜 쉽게 그만두는거죠?"

취업난이라는데 조기퇴사율은 높아지고 있단다. 취준생들은 대기업 취업을 꿈꾸지만, 막상 직장인들은 퇴사가 꿈이다. '퇴사 짤'이 놀이가 된 지 오래다. 퇴사한 직원이 '도비는 자유예요'라고 적힌 영화 <해리포터>의 집노예 도비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 두고 떠났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각종 커뮤니티를 떠돈다. 

분위기는 숫자로 나타난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해 6월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1년 이내 조기퇴사자'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 신규 입사 직원 중 조기퇴사 비율은 평균 28%, 'MZ세대 조기퇴사율이 높다'고 응답한 기업이 절반에 가까운 49.2%였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들은 퇴사율을 낮추려 고군분투 중이다. 'MZ세대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각종 자료를 기반으로 보상을 높이고, 워라밸을 챙기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며 직책을 없애기도 한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중소 기업의 퇴사 이유는 짐작된다. 연봉, 복지, 근로 조건 등이 대기업에 비해 열악할 가능성이 크다. 진짜 물음표는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대기업조차 조기 퇴사자가 늘고 있다는 점에 찍힌다. 

앞선 조사에서 기업들이 생각하는 MZ세대 조기퇴사 이유는 '개인의 만족이 훨씬 중요한 세대라서'(60.2%, 복수응답), '이전 세대보다 참을성이 부족해서'(32.5%), '시대의 변화에 기업 조직문화가 따라가지 못해서'(30.5%), '호불호에 대한 자기 표현이 분명해서'(29.7%) 등이다. 

정말 그럴까? MZ세대들은 '끈기가 없'고 '일보다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해서 '쉽게 퇴사를 결정하는' 걸까? 정말 이게 다라고 하기에는 미심쩍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잡플래닛에는 부당한 상황에서도 경력과 현실 문제로 꾹 참고 회사를 다니고, 이때문에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으며, 더 나은 커리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2030 직장인들의 고민이 적지 않게 접수된다. 

데이터는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잡플래닛은 프리미엄 리뷰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퇴사(를 한다면)의 이유 △회사를 계속 다니는(다녔던) 이유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생각인지 등을 묻는다. 6대 대기업(삼성·SK·CJ·LG·현대·롯데)의 150여개 계열사와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 등 입사 선호도 높은 기업에 남겨진 답변 9000여개(2021년 이후)를 토대로 이들의 진짜 퇴사 이유를 찾아봤다. 
◇ 대기업 퇴사 이유 1위 "회사의 비전이 어두워서" 

대기업 전현직원들이 '퇴사를 한다면(했다면)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것은 '회사의 비전이 어두워서(32.3%)'다. 6개 대기업을 따로 떼어 봐도, LG를 제외한 5개 대기업에서 이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네카라쿠배당토의 퇴사 이유는 회사별로 다르다. 네이버와 쿠팡, 배달의 민족과 당근마켓, 토스는 '지켜지지 않는 워라밸'이 가장 많은 응답을 얻었다. 카카오는 절반 이상인 52.8%가 '연봉과 복지가 좋지 않아서'를, 라인플러스는 42.6%가 '회사의 비전이 어두워서'를 꼽았다. 

의외다. 일반적으로 더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 대기업에서 '회사의 비전'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 "회사는 날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 미래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회사의 비전'에 대한 평가로 보이지만, 기타 응답을 보면 사실 진짜 이유는 '회사의 비전'을 넘어 '이 회사 안에서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모든 대기업에서 "10년 뒤 회사에서 나의 모습을 생각했을 때 미래가 없다" "회사의 비전은 좋지만 나의 비전이 보이지 않음" "나의 성장과 역량 개발이 어려운 환경" "배운다는 느낌이 없음" 등의 이유가 나왔다. 

외부의 시선에서는 안정적인 회사를 걷어차고 나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구성원들은 지금 이 회사에 있으면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당장은 불안하더라도 퇴사를 감행한다는 얘기다. 회사는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고, 회사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엿보인다. 어차피 정년까지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타 응답에서 "능력이 있어도 55세를 넘기는 사람을 못 봄" "정년이 짧아서 노후가 걱정됨" "계속 근무한다면 최종 종착역을 쉽게 알 수 있는 곳" "정년까지 일하기 힘든 환경" "대기업이라 성장 경로와 가능성에 한계가 있음" “도전하지 않는 대기업 문화. 추가 성장 의문” 등 비슷한 응답이 대부분 대기업에서 나왔다. '대기업'이라는 배경이 성장이 아닌 한계선을 긋는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재직자 중 '앞으로 이 회사에서 얼마나 더 근무하겠느냐'는 질문에 31.2%의 응답자가 '2~3년'을 말했다. 롯데는 35.2%가 6개월 내에 퇴사하고 싶다고 답했다. 정년까지 다니겠다는 이들은 전체의 18.6%에 불과했다. 
 
◇ "능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곳"…불합리한 조직 문화 

퇴사 이유에 대한 기타 응답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커리어 성장을 위해 퇴사한다"다. 미래는 불안한데, 회사 안에서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회사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방해한다고, 회사는 개인을 부속품으로 소모시킬 뿐 개인의 성장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러 대기업에서 "개인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회사의 필요에 따른 투입과 배치가 이뤄짐" "연말이면 직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환경이 조성. 돈을 많이 벌어도 불안하고 적자를 본 사업부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됨" "탑다운 형태의 조직문화. 부품같음" 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회사 안에서 제대로 된 롤모델을 찾을 수 없는 점, 불합리한 승진 평가 시스템은 이같은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한 응답자는 "자조적인 선배들, 여기서 잘 해봐야 선배들처럼 되겠다는 생각에 퇴사했다"고 했다. "술 잘 먹는 사람이 승진하는 곳" "정치력 없으면 45세 넘어선 집 간다고 봐야" "차별적 승진제도" "승진 적체와 불공평한 평가 제도"를 퇴사 이유로 꼽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 "요즘 애들은 끈기없고 워라밸만 중시해서 퇴사한다고?"…정말 그럴까? 

흔히 MZ세대 퇴사 이유로 '일보다 개인의 삶이 중요해서' 즉 워라밸을 중시하기 때문을 들곤 한다. 하지만 실제 대기업 응답 데이터에서 워라밸을 퇴사 이유로 꼽은 이들은 17.6%로 가장 낮았다. 

기타 응답에서는 오히려 업무강도가 더 세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고 싶다거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한다는 응답이 눈에 띈다. "스스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보다 많은 업무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고 싶다" "선배들을 보며 기술을 배우려고 퇴사했다"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필요해서 퇴사했다" "업무가 제한적이라서 도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이직했다" "규모는 작아도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흥미로운 일을 해보기 위해서"라고 이들은 말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등에서 20여년 간 HR업무를 해온 박세헌 엔픽셀 경영지원총괄은 "이들이 워라밸을 중시하는 이유는 '놀기 위해서'나 '일하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 조직이 구성원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 시대에 조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정당성은 사라졌고, 다음 스텝을 위해 개인적인 성장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참을성이 없다'는 기업의 생각 역시 데이터는 물음표를 찍는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경력을 만들기 위해서', '이직할 곳을 찾지 못해서'라는 응답이 많았다. 당장 퇴사하고 싶지만,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곳을 찾기 전까지는 참고 다녀보겠다는 얘기다. 

조기 퇴사율 증가를 세대론으로 묶는 목소리가 크지만 이를 세대 특성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가에대한 의문도 나온다. 박 총괄은 "IT 업계의 경우 일정 수준의 인력 이탈은 과거에도 지금과 비슷했고, 최근 퇴사율이 눈에 띄게 늘진 않았다"고 말했다. 

박 총괄은 "조직 선택의 기준이 달라졌고,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등 환경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과거에는 회사의 성장이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회사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장기적인 투자가 될 수 있었지만, 더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표면적으로 이들이 원하는 제도를 만들어줬는데도 퇴사율이 높다면 본질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일이 많아도 본인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면 한다. 일하는 문화, 개인의 성장 가능성, 일의 의미, 즉 회사에 시간을 투입한 만큼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는지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
*이 글은 '포춘코리아'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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