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헌 방화복은 왜 가방이 됐을까?

인터뷰
소방관의 헌 방화복은 왜 가방이 됐을까?
[인터뷰] 방화복 업사이클링 브랜드 ‘119REO’ 이승우 대표
2023. 04. 26 (수) 14:52 | 최종 업데이트 2023. 04. 27 (목) 11:10
만물이 푸르게 뒤덮인 봄. 매년 이맘때쯤이면 ‘지구의 날’을 맞이해 따뜻한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일상의 물건은 다시 보고, 버려진 것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업사이클링’ 제품도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시기. 가지각색의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저마다의 메시지를 제품으로 선보이는 가운데, 소방관의 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한다는 ‘119REO’(119레오)의 목소리는 어딘가 남다르다.

대학 동아리에서 알게 된 암 투병 소방관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 이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청년의 방화복 업사이클링 작업은 2016년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돼 왔다. 방화복 업사이클링 브랜드, 119REO는 제 역할을 다한 폐방화복을 사용해 가방 등의 일상품을 제작한다. 영업이익의 50%는 소방관의 권리 보장을 위해 기부한다고. 물건을 구매한 우리는 ‘후원자’의 이름을 달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생활로 일의 ‘의미’가 희미해질 때쯤, 가슴이 따르는 일을 하며 이 세상 모두에게 “서로가 서로를 구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승우 대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보자.

방화복과 119REO가 제작한 슬링백이 함께 걸려있는 모습 (사진=119REO 홈페이지)
◇ 건축학도 청년이 방화복을 만지게 된 이유

- 이승우 대표님, 반갑습니다. 자기소개와 팀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119REO 대표 이승우라고 합니다. 119REO는 소방관이 입었던 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하는 브랜드예요. 수익금 중 일부는 소방관 권리 보장을 위해 기부금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방관이 시민을 구하듯, 우리가 소방관을 구하자는 의미해서 업사이클링 작업과 기부를 시작했는데요. 이름도 ‘서로를 구한다’는 뜻의 ‘Rescue Each Other’를 줄여 119REO라고 지었어요.


- 대학생 때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다고요. 소방관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방을 만들게 된 배경이 있다면요.

소방관분들께 기부금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대학 동아리에서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난 故 김범석 소방관님의 유가족을 만나 뵌 적이 있었는데요. 소방관은 유해 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서 일하는데 반해, 암이나 여러 질병에 걸리면 인과관계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더라고요. 가족분들이 공무상 상해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 중이시란 걸 알게 됐고요. 이런 환경에서 소방관의 권리 보장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 대학생이라면 행동으로 옮기기도, 기부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를 포함해 3명이 뜻을 모았죠. 모금 방식보단 의미 있는 물건을 만들어 수익금을 기부하고 싶었어요. 뭘 만들까 고민하다 이 일을 하고 싶은 근본적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봤는데요. 소방관이 우리를 구해주는 것처럼, 우리는 소방관을 구하는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방화복’이 가장 먼저 소방관님을 지켜준다는 점에 주목했고요. 제 몫을 다한 방화복으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을 전달하면 의미 있을 것 같아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첫 제품을 만드는 데까지만 6개월이 걸렸죠.

현재까지 119REO의 기부와 지원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사진=119REO)
- 많은 제품 중 가방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방화복은 강도 대비 가볍고 튼튼한 소재를 써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가방을 만들기에도 적합해요. 방화복으로 가방을 만들면 무겁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현장에서 짊어지는 장비가 무거워서 옷까지 무거우면 구조하기 힘들거든요.

방화복은 ‘아라미드’라는 섬유 소재로 만드는데요. 불이 잘 붙지 않고, 날카로운 물질에 강해요. 방수 기능도 있고요. 이 세 가지 기능을 갖춘 소재로 가방을 만들면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되죠.


- 첫 판매는 성공적이었나요?

운 좋게도 크게 화제가 됐어요. 첫 크라우드 펀딩인데도 성공적이었죠. 한 국회의원은 故 김범석 소방관님의 이름을 따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2년 동안 국회에서 법안이 논의된 적 없었고, 투병 중이던 다른 소방관분도 돌아가시면서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이 오갔어요. 캠페인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져서 창업을 결심했죠. 그렇게 2018년도에 지금의 회사를 만들게 됐어요.


- 건축학도셨다고요. 그럼에도 이 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오래전부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건축학과에 들어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고요. 인간은 살면서 80% 이상의 시간을 건축물 실내에서 보낸다고 하는데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인생에 80%에 해당하는 영역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가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 거예요.

막상 입학하고 나선 1학년 때부터 수업을 잘 들어가지 않았어요.(웃음) 교수님께서는 그런 저를 걱정하셨고요. 교수님께 ‘학교는 제가 원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당돌했죠. 그랬더니 아직 사회의 쓴맛을 못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사회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으니, 사회 경험도 쌓고 창업도 할 수 있는 연합 동아리에 들어가 보라고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 동아리에서 이 일을 시작했고, '딱 1년만 해보자, 그럼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프로젝트가 창업까지 연결돼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교수님과 주변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네요.

전공을 본업으로 삼진 않았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일에도 조금씩 접목하면서 지금도 관심을 이어가고 있어요.

119REO가 판매 중인 가방 (사진=119REO)
◇ 방화복에 새로운 쓸모를 입히다

- 원하는 만큼 제품을 만들려면 방화복도 일정 수량 이상 필요할 것 같아요. 어떻게 수급하고 계신가요?

초기에는 작은 단위의 소방 센터에서 직접 받아왔는데요. 전국에 수많은 센터가 있다 보니, 매번 그렇게 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일을 꾸준히 하면서 규모가 큰 소방 본부 단위로 협약을 맺고, 한 번에 모아서 많은 양을 받고 있어요. 작년에 수거한 방화복만 해도 10톤이 넘을 거예요.


- 10톤이라니 엄청나네요. 이제는 제품을 생산하는 어엿한 회사가 됐어요. 팀의 역할은 나뉘어 있나요?

브랜드팀과 R&D팀으로 나눠 일하고 있는데요. 브랜드팀은 콘텐츠 제작과 생산·유통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콘텐츠의 경우 업사이클링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브랜드 IP 사업으로서 소방과 관련된 정보를 브랜드에 맞춰 기획하는 일을 말해요.

R&D팀은 ESG와 소재를 연구합니다. 업사이클링을 계속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환경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혹은 피해를 주고 있진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막 측정을 시작하는 단계고, 이를 통해 우리와 협업하고 있는 기업에 ESG 레포트를 제공하고 있죠. 또한 방화복을 원래의 소재인 아라미드로 되돌려서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도 실험하고 있어요.

세상에 탄소 배출 없이 만든 제품은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무언가를 '만든다'는 자체가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만들어진 제품 안에서 그 정도를 비교할 수 있고 제작한 팀의 과거의 행보, 향후 목표를 두루 살펴보면서 더 나은 제품을 선택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19REO는 브랜드와 R&D 두 팀이 서로 시너지를 내서, 현재도 미래에도 존경 받는 회사가 되면 좋겠어요. 아참! 다방면으로 재능을 펼치고 싶은 디자이너님을 모시고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연락주세요.(웃음)


- 석촌호수에 띄워서 화제가 된 ‘러버덕’을 업사이클링해 제품으로 만드셨다고요. 협업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요?

저희 팀은 ‘Rescue, Remember, Reverse, Each other’ 이 네 가지 가치를 중심에 두고 모든 일을 대하고 있어요. 소방관의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구한다는 뜻의 ‘Rescue’는 저희의 정신과 같아요. 또 업사이클링할 때 원래의 쓸모가 무엇이었는지, 실제로 가치가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선정해요. ‘Remember’는 이 가치를 기억하자는 의미가 있어요.

러버덕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도 이 가치들의 연장선이에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시잖아요. 큰 즐거움도 줬고요. 그렇지만, 제 역할이 끝나는 시점은 분명히 있죠. 이런 대형 벌룬 전시물이 쓸모없어진다고 하여 ‘하지 말자’라고 주장하기 보단 그 가치를 기억하고 다시 역할을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팀은 업사이클링을 통해 그 일을 행한 거고요. 러버덕 소재로는 파우치를 만들었는데, 구매 경쟁률이 굉장했다고 들었답니다.(웃음)

119REO가 제작한 '러버덕' 업사이클링 파우치 (사진=롯데쇼핑)
- 제품을 만들 때 ‘이것만은 지킨다’는 것이 있다면요?

‘내가 사기 싫은 건 만들지 말자’예요.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결국 살 법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여요. 그런 멋진 제품은 오래 쓰게 되죠. 제게는 필통이 그래요. 10년 전에 산 걸 지금도 쓰고 있어요. 제가 저희 제품을 모두 구매하는데 유일하게 사지 않은 품목이죠. 

이게 환경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무엇이든 만드는 것엔 에너지가 반드시 쓰이거든요. 친환경적일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번 사면 오래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버려지지 않고 계속 쓰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고요.


- 대표로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가치를 지켜내는 것' 사이에 균형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당연히 회사를 운영하며 어려움은 많죠.(웃음) 가치를 추구하면서 수익을 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의 시발점이었던, 소방관을 지키자는 뜻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를 찾아주는 분들도 제품 디자인뿐 아니라 메시지까지 보고 구매하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방화복이라는 공공재를 다루는 만큼 어떻게 하면 사회로 환원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요. 지금도 여전히 영업이익 중 50%를 소방관 권리 보장을 위해 기부하고 있어요. 제품을 구매하신 분들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후원자라고 칭해드리고 있고요.
  

소방관님과 이승우 대표 (사진=119REO)
- 119REO 팀이 함께 일궈낸 뜻깊은 일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기억에 남는 건 故 김범석 소방관님이 공무상 상해 소송에서 승소하셨을 때예요. 1심 선고 땐 유가족분들이 패소하셨거든요. 정말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죠. 재판을 함께 지켜보며 마음 고생을 했는데, 결국 2심에서 승소를 했어요. 믿기지 않았고, 그때를 잊을 수 없어요.

또 작년에는 특수 위험직무 근로자를 위한 ‘김범석 소방관법’(공무원 재해보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어요. 과거엔 소방관이 암이나 질병에 걸리면 본인이 공무와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만 했는데, 이제는 상해의 인과를 우선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면 국가가 역으로 인과 없음을 밝혀야 한다는 거예요. 이 법률이 통과된 것도 뜻깊게 생각하고 있어요.


- 변화를 직접 눈으로 보셨으니, 이 일이 더 뜻 깊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획 중인 프로젝트나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올해는 ‘소방관을 구한다’는 브랜드 키워드에서 조금 더 확장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먼저 5월 1일부터 14일까지 홍대 인근의 '오브젝트 서교점'에서 전시 겸 팝업스토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키워드로 한 <기억에 용기 남다>라는 전시인데요.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처럼, 우리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꼭 생명을 구하기 위한 거창한 결심이 아니더라도요. 용기를 낸다는 건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나의 일상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만나보는 기회가 될 거예요. 또 ‘피지컬100’에 출연한 홍범석 소방관님, 김민철 구조대원님과 함께 달리는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소방관 권리 보장과 환경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업으로 키워나가고 싶어요. 실력 있는 팀원분들을 더 모시고, 브랜드를 키우며 뜻깊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니 119REO팀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기억에 용기 남다> 전시 포스터 (사진=119REO)
 
장경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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