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받는 만큼만,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조용한 퇴사’가 대세랍니다. 회사 밖에서 또 다른 직업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능력있어 보이기도 하고, 재태크에 성공해 하루 빨리 은퇴하기를 꿈꾸는 이들도 적지 않고요. 그런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회사에 소속된 이상 우리의 본업은 직장인,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직장인으로 회사 일을 하면서 살잖아요.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하며 비슷한 월급을 받는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은 이들이 있습니다. 내 일에 진심을 다해 공들여 일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빛이 나지 않던가요?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일 하면서 '나 이렇게까지 해봤다'는 이들을 찾아봤습니다. 내 일에 진심인 유난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대부분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는 찐팬을 만들고 싶어하죠. 저희도 그랬고요. 그런데 어느날 지인이 올린 글을 보고 깨달았어요. 우리 미션은 우리를 좋아하는 팬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러면 자기를 사랑하게 만든 브랜드와 콘텐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 누구나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회사가 된 경우는? 전 세계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아마도 유일하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세바시 이야기다.
주식회사 세바시는 방송사 최초로 프로그램에서 시작한 회사다. CBS의 한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그것도 예능이 아닌 교양, 그것도 재미없다(?)는 강연 프로그램이 독립 법인이 됐고, 이를 만든 PD와 회사가 공동으로 지분을 갖고 있다. 기업,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언론사, 그런데 그중에서도 보수적일 것 같은 기독교 방송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모델이 나온 셈이다.
그러고 보면 세바시는 시작부터 꽤 파격적이었다. 방송사가 만든 프로그램이 자체 채널이 아닌 유튜브 콘텐츠로 시작한 건 당시에는 전례 없던 일이다.
2011년 출발해 올해로 12년 차, 그사이 유튜브 구독자는 177만 명이 됐고, 조직 구성원은 25명으로 늘었다. 이쯤 되면 이를 만든 PD는 '나 성공했다' 할 것 같은데, 막상 그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단다. 그래서겠다. 세바시는 강연 프로그램을 넘어 세바시 대학, 세바시랜드 등 커뮤니티로 세계관을 확장 중이다.
이런 세바시가 지금 최대 위기에 처했다고 말하는 세바시를 만든 이, 구범준 대표PD다. 세바시 속 연사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누군가의 세상을 바꿔 나갔다면, 구 대표PD 역시 그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직장인에서 대표가 된 PD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을까? 그의 시작부터 꿈꾸는 미래까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 여기에 야망 있는 직장인을 위한 세바시 출연 팁까지.
-세바시가 독립법인이 된 지 벌써 6년이 흘렀는데요. 조직 안에서 제작비를 받으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직원들을 책임지는 회사를 운영하는 것, 굉장히 다른 이야기잖아요. 직접 회사를 운영해 보니 어떠세요?
방송사와 PD가 공동 지분을 갖고, 직원이 2대 주주가 돼서 회사를 세운 건 처음이죠. 시작할 때부터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내고 자립한다는 것이 제 기획의 핵심이었어요. 2011년 5월에 세바시를 시작하고, 그해 실제 수익을 냈어요. 이를 근거로 회사에 성장하면 독립시켜달라고 요청했고, 실제 독립법인이 됐죠.
독립 법인이 되고 저도 좌충우돌이 많았어요. 2021년까지 10명도 안 되던 조직이 25명으로 커지면서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고요. 세바시가 조직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했는데 정작 우리는 고민을 많이 못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미션과 일을 하는 이유, 우리의 가치 같은 것들을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조금씩 회사로서의 틀을 갖춰가고 있는 거죠.
이번에 전 구성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지급하기로 했어요. 돈 보다도, 구성원들, 즉 우리가 회사의 주인이다, 그러니 앞으로 더 재미있게 하자는 의미에서요.
-세바시는 유튜브 콘텐츠로 시작했어요. 방송사가 만든 프로그램을 자기 채널이 아닌 유튜브에서 시작한 것도 이례적이었죠. 거기다 독립 법인 설립까지, 전례 없던 일이라 내부에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설득하셨죠?
쉽진 않았죠. 전 신입 때부터 회사에 나를 증명하려고 꽤 애를 썼어요. 내가 기획한 일이 성공해서 그 결과가 회사에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내 목표였고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그 결과가 회사에 좋은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내가 증명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바시를 기획한 것이 마흔쯤인데요. 제작비가 다른 프로그램보다 몇 배는 더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하겠다, 최종 결정권을 달라, 독립시켜 달라, 이런 제안이 회사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 있잖아요. 그동안 보여준 것 없는 사람이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면 회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나름대로는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애쓴 십여 년의 시간이 쌓여 회사에서도 '그래 일단 들어는 볼게, 한번 해봐' 하고 말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시간들 덕분에 설득할 수 있었고, 시작할 수 있었고, 운 좋게 실제 결과도 좋았고요. 전 운도 결국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애쓰고 노력한 것들이 쌓여 운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하고요.
"회사에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어요.
그래야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니까.
운도 결국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내 운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라 생각하는 것보다 희망적인데요! 10여 년간 회사에 나를 증명하려고 애쓴 시간과 경험, 성과가 쌓여서 가능했다는 거군요. 그런데 왜 그렇게 회사의 인정받고 싶으셨던 거예요?
인정을 받는다는 건 도구일 뿐이죠. 이유는 사실 하나에요. 조직 안에서 내가 인정받고 지원을 받아야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니까.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는 결국 PD로서의 신념인 건데요. 제 미션은 개인과 공동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고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대부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욕구는 그렇잖아요. 예능을 만드는 사람도 '난 그냥 웃기려고 하는거야' 하는 사람은 없어요. 웃음을 통해 어렵고 힘든 세상에 용기와 위안을, 행복을 주고 싶어서 만들거에요. 이런 욕구는 대부분 사회적인 것, 이타적인 거라고 봐요.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향한다는 전제를 공통으로 하죠. 보는 사람 좋으라고 만들어요.
이게 일하는 이유인 거고, 우리는 세바시, 세바시랜드를 통해 이를 구현해 내고 있는 거고요.
-조용한 퇴사나 파이어족 같은 말이 유행이에요. 회사는 월급을 받기 위해 다닐 뿐, 적당히 일하고 회사 밖에서 내 진짜 인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은 것 같고요. 그래서 회사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왜 그렇게까지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거든요. 아마 누군가는 구 대표PD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할 것도 같아요.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의 진짜 생각이 아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누구나 자기 일을 잘하고 싶을 거예요.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좀 편하게 해야지' 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일을 하다 막힐 때 아니에요? 잘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될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그건 진짜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사람들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타적이라고 믿어요. 사업가는 사업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PD나 기자는 콘텐츠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PD가 100명이 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 이게 편하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기획을 하지는 않죠. 이왕 만들 거면 온 지구가 봤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세상이 뭔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죠. 그런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가장 실망한 사람은 자기 자신일 거예요. 이걸 '나 편하게 일했으니까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글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우리 직원들에게 가끔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변화를 만들지 못할 거면 안 하는 게 낫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무엇을 만든다면 세상을 바꿔버릴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세바시의 시작도 그랬어요. 당시 강연 프로그램은 이미 많았어요. 강연 프로그램을 만드는 공식이 있어요. 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을 20명쯤 고용해서, 박수부대라고 하죠, 불러서 강연 듣고 박수치고 한두 시간 녹화하고 방송하고.
그런데 똑같이 이렇게 하면, 똑같은 프로그램이 나오겠죠. 달라지는 것이 없잖아요. 그래서 강연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파괴적인 방법으로 시작해 보자.
그때 제가 생각한 강연 프로그램의 새로운 정의는 '400명 규모의 콘서트장에서,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참여한 관객들을 앞에 두고 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관객이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오는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나 음악회 같은 콘서트 프로그램 정도였죠.
"회사 일을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요?
그건 당신의 진짜 생각이 아닙니다.
잘하고 싶잖아요."
-처음 시작할 때 400명의 관객을 모은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것도 예능도 아니고 교양 강연인데. 첫 녹화를 앞두고 수많은 걱정이 들었을 것 같아요.
3개월 정도 기획 후 첫 강연회를 했는데, 친구들부터 교회 청년들까지, 여기저기 사람들을 부르고, 그때는 흔하지 않았던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여기저기 팔로잉을 하고. 그렇게 해서 첫 강연에 50명 정도가 모였어요. 그중 30명은 우리 회사 직원들이었고.
강연 시작 전 관객석을 봤는데, 400석 규모에 50명이 앉아있으니 빈자리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관객석 불을 껐어요. 한번 강연하면 6명이 하거든요. 그래서 세바시 1회부터 6회는 객석이 까매요. 안 보여. 사람들의 눈빛만 보여요. 그런데 그 화면을 편집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니까 빈자리가 많은 게 당연한거 아닌가? 이게 왜 창피하지?
그래서 다음부터는 빈자리를 보여줬어요. 빈자리를 보여주고, 여기가 너의 자리라는 걸, 네 자리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주자. '아, 나도 저기 가서 직접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자. 그래서 관객들이 집중하고 있는 모습,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강연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당시만 해도 강연 프로그램에선 관객의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았어요. 사실 강연 프로그램이 재미있기가 힘들잖아요. 그러니 관객의 반응을 화면에 담기가 힘들었죠.
이런 관객들의 모습을 담으려면 실제 강연회가 재미있어야 하잖아요. 스텝들이 앞에서 춤도 추고, 선물도 주고, 재미있는 관객 경험을 만들기 위해 별의별 방법들을 시도했죠. 저희 스텝들이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러고 나니 참석자들이 SNS에 올리고, 그러면서 방송에선 안 보이지만 실제 세바시 강연에 가면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한번 가볼까? 하는 인식이 퍼졌어요.
7개월 만에 400석이 다 차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강연을 못 하게 되기까지 만석이 안된 적이 없었어요. 나중에는 추첨해서 뽑혀야 올 수 있는 곳이 됐고요. 관객 경험이 재미있어지니 강연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강연자들도 관객에게 감동을 받고, 재미있는 경험을 쌓고,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지금의 세바시가 된 거죠.
-콘텐츠를 만들려면 돈이 들잖아요. 특히나 강연 프로그램이니 대관, 섭외, 스텝들도 많이 필요하고. 콘텐츠 만드는 입장에서 매출을 생각하다 보면 콘텐츠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심지어 독립법인이 됐으니 이런 부담은 더 커졌을 것 같고요. 정체성을 유지하며 돈을 번다는 것, 콘텐츠 만드는 사람이라면 빠지게 되는 딜레마일 것 같거든요. 솔직히 흔들릴 때는 없으셨어요?
물론 저희도 기업의 협찬을 받아요. 하지만 세바시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지켜요. 우리의 가치가 더 중요하니까. '돈을 냈으니 이런 방향으로 만들어 달라'는 어떤 경우에도 수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어요. '세바시 웨이'라고 말하는데요. 이런 원칙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관객이, 독자들이 알아요. 그럼 우리는 존립할 수 없다는 걸 알고요.
이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사건들도 있었죠. 다만 문제가 생기면 저희는 잘못했다면 사과하고 선언하고 솔직하게 밝히는 선택을 해왔어요. 그래서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게 지난 6년 동안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기반이기도 했는데, 지난 6년 동안 이만큼밖에 성장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해요. 비슷하게 시작해 몇조 원대 회사로 성장한 스타트업들도 있으니까. 만약 더 공격적이고 경영 잘하는 사람이 대표를 했다면 아마 더 성장했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PD로서 지켜야 할 가치나 정체성은 어땠을까, 글쎄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저희의 선택은 이거였어요.
-시도한 것들을 다 성공시켰다면 '우아한형제들'만큼 컸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다 잘된 것 같은데 어떤 실패를 하신거죠?
사실 좀 허세로 말한 거긴 한데. 사실 우리가 기업으로서 엄청나게 커질만한 도전을 한 건 없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운 좋게 큰 실패를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엄청난 도전을 한 적이 없는 거예요.
저희가 해외에서 한 60명 정도 연사를 초청해서 제주도에서 3박4일 캠핑형 콘퍼런스를 한 적이 있어요. 700명 규모, 그것도 유료로. 그런데 모르시죠? 저희 입장에선 대규모 적자를 봤거든요. 저희가 한 가장 큰 실패였던 것 같은데 또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 타격을 받은 건 아니거든요.
세바시의 가장 큰 위기와 도전은 지금이에요. 조직이 25명 규모로 커졌는데 전 이정도 규모의 조직을 운영해 본 적도 없고, 특별한 캐쉬카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콘텐츠뿐 아니라 커뮤니티 플랫폼 개발을 시작했으니 이용자를 모아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요. 이번 일이 실패한다면, 아마도 가장 큰 실패가 되겠네요.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은 혼자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커뮤니티'여야 하는 거죠.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의 미션이에요"
-세바시 대학, 세바시랜드 등 커뮤니티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어요. 왜 지금 커뮤니티죠?
우리가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에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을 더 나은 미래의 삶과 연결하는 것, 그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동안 세바시 강연을 보며 사람들은 배움을 얻기도 했고, 위로받고, 조언을 받기도 해왔잖아요.
사람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나쁜지 좋은지 발전하고 있는지는 사실 혼자서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아닌 타인이 있어야 해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성찰할 수 있고, 내 자리를 알 수 있고, 내가 앞으로 더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죠. 공부를 하더라도 혼자 하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같이 공부해야 오래 지속 가능하고 누군가 나에게 알려주기고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알려주면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사실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 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결론은 '커뮤니티'여야 하는 거죠. 그래서 또 생각을 해보니 세바시 자체가 이미 학습 커뮤니티였어요. 이미 1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강연을 보고, 강연을 보며 배운 것과 느낀 것을 댓글로 달고, 서로 토론하고 소통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 강연 콘텐츠들은 하나하나가 커리큘럼이더라고요. 주제별로 잘 정리하면 철학이, 국문학이, 각각의 주제에 따라 전공이 나와요. 우리가 이미 이걸 하고 있었구나를 안거에요. 그래서 아예 노골적으로 해보자 해서 만든게 세바시 대학이에요.
세바시 대학을 운영하다 보니,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만들어서 함께 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든 게 누구나 커뮤니티를, 학습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소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 세바시랜드고요. 세바시 강연자들이 그 안에서 수업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내기도 하고, 내 이야기로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요. 실제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하세요.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됐다, 사랑하게 됐다'고요.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콘텐츠 사업의 본질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요. 그때 저도 깨달았어요. 그래 우리의 사업 목표는 이거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게 하는 서비스. 그래서 사실 우리의 시도는 하나고요. 우리의 콘텐츠를 보는 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게 만드는 것,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 저는 우리의 미션은 이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연결해 준다는 건 그 사람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면 해결되는 거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이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겠나, 그렇지 않나요?
사실 플랫폼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지난 3년간 준비해 이제 조금씩 모양을 잡아 나가는 것 같아요. 2022년 1차 세바시랜드를 오픈했고, 7월에 업데이트해서 2차 공개를 할 예정이에요. 차근차근 해 봐야죠.
-그동안 쌓인 세바시 콘텐츠를 보면, 독자의 관심과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느껴질 것 같아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커뮤니티까지 생기면 세바시랜드 안에서 세상의 변화와 흐름이 바로 느껴질 것 같고요. 요즘 사람들이 관심사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초창기 5~6년은 도전의 시대였던 것 같아요. 자기계발, 도전해 보자 이런거요. 그러다 사람들이 힘든 걸 위로받고 힐링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죠.
지금은 유명하거나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노력해 이룬 작지만 큰 성취같은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배달일을 하던 사람이 노력해 조그만 전셋집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는 거죠. 힘든 시간을 보냈구나, 쉽지 않았겠구나, 그런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해봐야겠어 이런 흐름이 있어요.
영웅에 박수치는 시대는 조금 지나간 것 같아요. 연예인이 나와도 얼마나 대단한 커리어를 이뤄냈는지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아빠로서 아이를 키우는 담담한 이야기를 들으며 박수를 보내죠.
또 사람들의 욕구가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걸 느껴요. 나는 별로 재미없는데 싶은 이야기에 누군가는 '정말 필요한 이야기였다 고맙다'는 댓글이 달려요. 그래서 우리 강연자들의 직업이 몇 배로 다양해졌어요.
재미있는 건 최근에 양자역학 강연이 나갔는데 조회수가 50만, 60만이 넘었어요. 근데 이거 진짜 딱 양자역학, 어려운 내용이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양자역학을 공부할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 열광해요. 이런 걸 보면 예전에는 '닮고싶다'의 욕구가 컸다면, 지금은 '알고 싶다'는 욕구가 크구나 하는 걸 느껴요.
-이런 변화의 이유는 뭘까요?
강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강연을 듣는 이유는 답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내가 궁금하고 몰랐던 것을 나보다 똑똑하고 더 많이 경험하고 성취한 대단한 사람이 답을 알려주는 거죠. 그래서 '강연은 답'이었어요.
그런데 강연을 아무리 들어도 내 삶이 바뀌진 않는 거예요. 사람들은 이제 '내가 들은 답이 그 사람에게는 답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답이 아니구나', '이 강연자가 나에게 준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었구나, 답은 결국 내가, 내 삶에서 찾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요즘 친구들은 책이나 강연을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답은 결국 스스로 찾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 우리의 강연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에요.
-그래서일 것 같아요. 유명 연사들의 이야기도 좋지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가더라고요. '세상에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특별하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는데요. 그렇다고 누구나 세바시에 출연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섭외 기준이 있다면?
특별한 자격 기준은 없어요. 사람들이 공감할, 좋아할 이야기들을 찾죠. 이런 면에서 대중적 인지도는 물론 고려 대상이 되죠.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들은 안 되느냐, 물론 그건 아니고요. 이미 출연하신 분들을 보면 알잖아요. 이때 고려하는 것이 이 사람의 이야기가 확산성이 있는지를 보는데요.
저희 커뮤니티에 세바시 스피치 과정이 있어요. 내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법을 배우는데,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스피치 영상을 세바시대학 채널에 올려요. 이 중에 요양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하신 분이 계신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어요. 세바시 본 채널에서 130만 조회수를 올렸죠.
살펴보니 이게 중요하더라고요.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질문이 되는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그렇다'는 답을 찾았다면 도전해 보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