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있지만…'직장 갑질'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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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있지만…'직장 갑질' 사각지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법 실효성 강화해야"
2020. 07. 16 (목) 18:09 | 최종 업데이트 2021. 12. 09 (목) 09:35
1. 회사 사장의 아내가 '상무'라는 직함을 달고 출근하면서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업무를 인수인계하라"는 말에 늦게까지 일하며 자료를 마련했는데, 인수인계가 끝나자마자 해당 업무에서 배제됐습니다. 상무는 직원들 앞에서 제게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하고, 회사에 나오지 않는 연휴 사이에 상의 없이 자리를 옮겨 놓기도 했습니다. 참다못해 상무의 남편인 사장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는 없었습니다.

2.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5인 미만 복지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직원 회의 때마다 시설장은 사무실 일을 밖으로 알리는 직원은 "모가지를 자른다"고 말합니다. 한번은 "그러지 마시라"고 했더니 "이런 X같은 X아. 다른 직원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왜 너만 말대꾸야"라며 윽박질렀습니다. 그 욕설이 잊히지 않고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3. 센터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청에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은 "그 나이 꼰대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말하고, 결재가 미뤄지거나 직원의 사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도 그러는데 그럼 나도 괴롭힘이냐"며 부정적 말을 하고 있습니다. 괴롭힘을 입증할 녹음과 녹취가 있음에도 근로감독관이 이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위 사례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당사자는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적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사장의 가족이라서, 5인 미만 사업장이라서, 신고까지 했지만 근로감독관의 소극적인 태도 등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됐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고 있다. 민간 공익 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법의 한계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이를 개선해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컴퍼니 타임스는 심포지엄 내용을 바탕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와 사각지대를 점검해 봤다.
1. "사장 아들 괴롭힘을 사장에게 신고하라니…" 사내 해결 하라는데 될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사용자)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조사와 후속 조치 의무 역시 모두 사업주에게 있다. 괴롭힘을 사업주에게 신고해 사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제도는 얼핏 민주적인 듯 보이지만 큰 약점이 있다. 사업주 본인이나 친인척, 특수 관계자(동업자 등)가 가해자일 때는 법에 따른 명료한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사업주 이외의 직원이 괴롭힘 행위를 한다고 해도, 사업주가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거나 △가해자 편에서 조사하거나 △2차 피해를 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 "사업주 친인척의 괴롭힘 행위를 근로감독관의 조사 범위에 포함하는 등 지침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직장갑질119는 "이를 빠르게 개정하고, 친인척 갑질이 벌어지는 회사들에 대한 근로 감독을 통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2.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하청, 특수 근로자도 '제외'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조차 할 수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이다. 근로기준법 일부는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그렇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을 받기 어렵다.

직장갑질119의 오진호 집행위원장은 "여러 기준들 때문에 당장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범위를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법의 취지만 봐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게 맞고, 개정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을 직접 적용받지 않는 하청·협력 업체 소속이나 프리랜서 같은 특수 근로 노동자들 역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적용받을 수 없다. 원청이나 사업주에게 '갑질'을 당해도 이를 해결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3. '괴롭힘' 맞아도 가해자 처벌은 못해…"별도 처벌 조항 필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가해자를 직접적으로 처벌하거나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현행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직원을 해고하는 등 불이익 조치를 할 경우'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괴롭힘 가해자가 아닌 불이익 조치를 한 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조항일 뿐이다.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어 상습적이고 중대한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지적은 법이 제정된 때부터 이어져 왔다. 직장갑질119는 "사업주가 가해자인 경우 노동청에 신고한다 해도 현행법상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기 어렵다"며 "폭행, 폭언 등이 형사 처벌 사항에 해당하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은 위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별도 처벌 조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4. 참다 못해 신고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근로감독관…2차 가해까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가는 곳이 바로 노동청이다. 현행법상 △사용자가 가해자이거나 △회사에서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피해자 보호 등 조치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노동청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부 근로감독관은 법의 미비를 따지며 조사조차 하지 않고,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퇴사하면, '퇴사했으니 조사가 어렵다'며 돌려 보내기도 한다.

모든 근로감독관이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2020년 5월 31일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진정 4066건 중 42.3%는 취하됐다. 실제 근로감독을 시행한 사업장은 15건으로, 0.3%에 불과하다. 직장갑질119는 "일부 근로감독관이 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2차 가해에 가담하고 있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 적용 범위 확대하고 괴롭힘 예방 교육 의무화해야"
심포지엄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한계와 법 개정 방안'을 발제한 김동현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 강화를 위해 △직장 내 괴롭힘 개념 구체화 △ 5인 미만 사업장, 사내 하청, 협력 업체, 특수 고용 노동자 등 적용 범위 확대 △사용자가 가해자일 경우 노동부 개입 근거 마련 △예방 교육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 현장 일선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제도의 한계가 있어 해결이 어렵다"는 말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법 사각지대에 있는 근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연 법 개정이다.

오 위원장은 "법이 실효성을 가지게 되면 평범한 직장인들이 더 용기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경직된 조직 문화를 민주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법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고 말했다.
 
장명성 기자 [email protected]
#직장인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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